사람들은 수많은 만남을 경험한다. 때로는 인생에 큰 도움과 격려가 되는 만남으로 기뻐하기도 하고, 잘못된 만남으로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일생을 함께하는 만남도 있고, 잠시 만난 것으로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만남도 있다.
사람과 과학이 만나는 것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항생제가 만들어지면서 인류에게 큰 도움을 준 만남이 있는가 하면, 핵분열 시 일어나는 에너지를 발견한 후, 그 에너지를 핵무기 개발에 사용하여 전 세계를 여전히 핵무기의 공포 속에 가두게 한 잘못된 만남도 있다.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유익한 만남이 되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람과 과학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기술이 사람들에게 유익한 만남이 되려면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노력이 사람과 과학 쌍방의 노력이 아니라 온전히 사람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과학과 기술은 스스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술은 어떻게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Wright) 형제가 세계 최초로 조종이 가능한 동력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인류와 비행기의 진정한 만남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역사적인 첫 비행 이후, 수많은 사람들은 비행기와의 만남이 인류에게 유익한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열정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불과 100년이 조금 지난 현대의 우리는, 전 세계 대부분의 도시를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놀라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처럼 비행기와 인류의 만남은 단순히 새로운 교통수단을 갖게 됐다는 수준의 만남이 아니라, 전 인류의 생활 방식의 근간을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만남이다.
지난 28년을 미국의 항공우주국 (NASA)에서 항공 기술 개발과 관리에 전념해왔지만, 지금도 나는 비행기에 탑승하면 반가움과 설렘을 느낀다. 1960년대 이후 제트기를 이용하기 시작한 민간 항공은 모든 교통수단 중 가장 안전한 수단으로 발전하면서 전 세계 70억이 넘는 사람들의 무수한 만남이 가능하도록 큰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더욱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인 비행기와 운항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 바로 이러한 소중한 만남을 가능하게 돕는 일이기에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와의 첫 만남을 이러한 만남의 기쁨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즈음에는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당시 월남의 여러 건설 공사의 책임자였던 아버지를 전송하러 김포공항에 갔을 때,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보잉사의 707 제트기에 오르며 전망대에 있던 어머니와 나에게 손을 흔드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오래된 비행기와의 첫 만남은 아련하고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치 색 바랜 가족사진을 꺼내보듯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의 기억이 더해진 기억으로.
 
이제 21세기에 들어와서 항공 업계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해마다 더 심각해지고 있는 대도시들의 교통지옥을 해결하기 위해 도심 안에서 운행할 수 있는 소형 전기 자율 비행기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행기는 조용하고 안전한 수직 이착륙, 친환경 전기 추진 장치, 전문적인 조종사 훈련과 면허증이 없어도 운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동화, 정확한 항로를 유지하게 해주는 통신, 그리고 항법 기술과 같은 다양한 기술들이 융합되면서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바야흐로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도심 안에서 하늘을 열게 되는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고 있다. 이처럼 전혀 새로운 항공 기술이 우리와 만나게 될 때, 우리는 모두 그 첫 만남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비행기에 오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오랫동안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있듯이.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버지니아공과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 박사. 최우수 공직자 대통령상(Meritorious Presidential Rank Award) 수상(2008, 2016), Aviation Week Laureate Award 혁신부문 상 수상(2017). 現 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 부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