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광고와 패션 사진을 찍던 나는 2005년부터 컴패션이라는 국제어린이 양육기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어느덧 13년이 되었다. 필리핀의 무덤 마을이 처음 간 컴패션 현장이다. 무덤 사이에 길을 내고 천막을 걸쳐 하늘을 가리고 식탁과 책상 삼아 밥을 먹으며 그곳의 사람들, 작고 마른 어린이들이 살고 있었다. 처음 현장에 도착한 나는 황망해 하며 여행을 이끌던 한국 컴패션 대표에게 물었다. “어떤 사진을 찍어 드릴까요?” “굳이 사진은 안 찍어도 되니 그냥 마음으로 보시면 됩니다.” 광고사진처럼 클라이언트 주문에 맞춤 사진을 찍어온 터라 습관처럼 터져 나온 질문이었다. 그즈음 풋내기 크리스천으로서 한창 마음이 뜨거웠던 터라 내 재능이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갔던 여행이었기에 대표의 답이 중요했다. 하지만 마음으로 보라니.

갑자기 부담감이 커지고 고민이 많아졌다. 미국으로, 호주로, 유럽으로 아름다운 풍경에서 예쁜 모델만 찍어온 나로선 어린이도, 풍경도 모두 낯설었다. 이렇게 조금은 어려운 마음을 안고 현지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좁은 집안에서 예닐곱 명의 가족들이 모여 사는 옆을 지나는데 한쪽에서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덤 비석 사이로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모습이 그렇게 씩씩하고 해맑을 수 없었고, 한편으로는 충격적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그들을 웃게 하는지 답을 찾는 기분으로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그제야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느낀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분명 내 안에 무언가가 무너졌지만, 가난이 주는 비참함과 열악함 때문에 무너진 것은 아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판잣집,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길. 생각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놀랐지만, 그들의 생명력, 살아있음, 사랑받고 있는 자의 존귀함에 무너졌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2006년 태국 치앙마이에 갔던 때가 생각난다. 새벽에 나는 교회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숙소 근처였다. 이른 새벽인데도 밖에 나와 뛰노는 컴패션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속에 끌린 클라이라는 자그마한 소녀가 있었다. 볼이 발그레하고 쑥스러움이 많은 어린 소녀였다. 그 첫 만남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도 모르게 계속 셔터를 눌렀다. 3년 후 때마침 치앙마이 근처에서 다시 촬영할 기회가 생겼고, 보고 싶었던 끌린 클라이를 다시 찾았다. 컴패션의 지속적인 돌봄과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은 끌린 클라이는 어느새 밝고 예쁜 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도 여전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왠지 모를 뿌듯함에 참 기뻤다. 그리고 올해 한 번 더 끌린 클라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16살의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다. 어른이 되면 멀게만 느껴질 줄 알았는데, 키가 커도 졸업을 앞두고 있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컴패션 사진은 광고 사진과 달리 그 가치가 오래 간다는 게 다를 수도 있지만, 작업 과정은 같다. 그런데 정말 행복하다. 우리는 원래 사람 사는 일들에 대해 자질구레한 것을 다 껴안고 살고 있다. 사진으로 보면 아름답지 않은 일상은 없다. 그것이 컴패션 사진을 찍을 때 더 행복한 이유다. 한번은 아이티에서 켄시아라는 컴패션 졸업생이 의사로서 자원봉사하는 마을에 갔었다. 사람이 살기 힘든 황량한 마을이었지만 아름다웠다. 바로 켄시아 때문이었다. 물도 길어오기 힘든 허허벌판 판잣집에 살면서도 다른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어린 소년 소녀들 때문에. 사랑받은 흔적을 또 다른 이에게 전하는 사랑스러운 생명 때문에.

내 안의 컴패션 기록은 희망을 쫓아다닌 사랑의 기록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한 생명, 그 소중함이 그대로 담기기를 바랐다. 그동안 몇 번의 전시회를 열었고, 사진집도 출간했다. 블로그 활동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문득 사진으로 어린이들의 가난을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 수 있는 건, 들어야 했던 건, 사진을 보시는 분들이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사진이 어떤 이미지가 아닌 메시지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약하기에 소중한 존재들이,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끌린 클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