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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문제의 시작은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제2의 사춘기…. 마흔 살의 나는 열일곱 살 때보다도 더 가열차게 아프기 시작했다. 3년 3개월이 되던 무렵 처음 앉았다던 피아노 앞, 그곳은 언제나 당연하게 나의 자리였다.
피아노는, 아니 음악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소꿉 친구였고, 내가 쉴 수 있는 편안한 의자였고, 내 감정을 모두 받아주는 대나무 숲이었다.
가끔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익숙함을 넘어서 피곤함과 지루함으로 다가오는 시간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내게 유일하고 특별한 동반자였다.
피아노를 치다가 외도하듯이 락밴드를 해보기도 하고, 작곡이며 지휘를 기웃거리기도 했으나 음악이라는 넓은 세상 안을 탐험했을 뿐, 벗어나 본 적도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음악은 의심의 여지조차 없이 내 삶의 일부분이자 나 자신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던 내게 찾아온 두 번째 사춘기는 혹독했다.
열일곱 살의 내가 충분히 만나주지 않은 마음이라도 있었던 걸까….
20년을 넘게 내 안에 숨어 있던 의심과 질문들이 몸뚱이를 키운 채 내 앞에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내게는 왜 다른 선택의 기회가 없었나?’
‘다른 인생을 살 수는 없을까?’
‘더 나이가 들었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이없게 쏟아지는 마음속의 질문들과 싸우면서 점점 하는 일이 재미가 없어지고, 답답해지고, 심지어 숨이 막혀오기 시작하던 무렵, 결국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설렘을 되찾고 싶다, 가슴 뛰는 순간을 만나고 싶다.’
내 여행의 화두는 이것이었다.
다음 행선지도 숙소도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떠나는 날짜와 돌아오는 날짜만이 정해진 여행.
나는 떠돌고 떠돌면서 찾아보기로 했다.
살아온 날들보다 남겨진 날들이 더 적을 수 있음을 조금씩 실감하게 된 나이어서일까.
무엇을 찾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찾고 싶었고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여행이 길어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만나서 깨달음을 얻거나, 가슴을 뛰게 하는 어떤 사건이나 만남이 내 이후의 갈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랬으나 그런 요행이 쉽게 허락될 리 없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무리해가고 있던 어느 날, 그들을 만났다.
수없이 지나치던 거리에서 내 발길을 멈추게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이들.
누구도 귀 기울이는 이 하나 없는 거리, 쏟아지는 햇살을 가릴 차양 하나 없는 그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던 색소폰 연주자, 그리고 이름 없는 레스토랑 안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연주하면서도 대형 콘서트홀에서 협연을 하는 솔리스트보다 더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던 바이올린 연주자.
그들이, 그 거리의 악사들이 내 마음을 꿈틀대게 했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그들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서 카메라를 뒤져 찾아낸 그들의 사진을 한참동안 응시했다.
그들에게도 반복되는 일상은 때때로 지루할 것이다.
연주하는 동기라고는 관광객들이나 거리의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게 하는 것, 고작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수많은 거리의 악사들 중 유독 그들의 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던 이유는 ‘살아있음’ 때문이었다.
그들의 공연장은 거리이고, 그들의 연주는 생활을 위한 것일지언정 그들은 진정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서있는 곳에 머무르고 있었고 집중하고 있었고 즐기고 있었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현재를 살라고,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을 노려보면서 지금 열려있는 문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너만의 음악을 너만의 목소리를 사랑하라고.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설레는 순간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설레게 할 너만의 음악을 찾고 만들어 가는 건 어떨까?
네가 놓치고 있는 건 what이 아니라 how인건 아닐까?
그리고 어떤 새로운 꿈도 현재를 외면하고 가서는 안 되는 거잖아. 도망치지 말고 네가 넘어진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넌 할 수 있어!
그렇게 내 여행은 끝났다.
그리고 나는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며 다시 꿈꾸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가기로.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행복하기로.
Today, Here, Now….
나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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