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는 우연히 노트르담 대성당 성벽에 새겨진 ‘ANArKH’(아나키아, 그리스어로 ‘숙명’)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1831) 을 탄생시켰다.

 15세기 프랑스 파리에 흩어진 인간 군상들을 전면에 내세워 펜촉보다 예리한 필치로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견했다. 지구가 200여 번 도는 동안 이 작품은 성벽의 글자처럼 묵직한 울림으로 남아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었다. 그 중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이하 노담)는 원작의 감성과 시대정신이 응축된 미학적 완성도로 찬사를 받아왔다. 특히 한 편의 시와 같은 ‘음악’(넘버)은 문학성이 짙게 물든 아름다운 언어로 기억된다.

 

 1998년 파리 초연 이후, 전 세계 16개국에서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프랑스 뮤지컬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노담>의 선율은 유럽·남미 등에서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칸타우토레(Cantautore, 작곡가 겸 가수) 리카르도 코치안테(Riccardo Cocciante, 70)1)의 천재성으로 빚어졌다. 위고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돌의 거대한 교향악’이라고 한 것처럼 <노담>을 ‘거대한 교향악’으로 완성시킨 세계적인 거장을 만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찾았다. 한국 초연 10주년에 맞춰 내한한 그는 두 손 모아 거듭 감사를 전했다.

 “2005년에 초연되고 벌써 10년이 흘렀어요. 당시 저는 한국에 대해 잘 몰랐지만 조금씩 한국의 훌륭한 문화를 알게 되면서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됐어요. 그동안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기적만큼 환상적인 경험을 했어요. 시작 단계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도, 가능성을 짐작할 수도 없었죠. 아무리 번역이 좋아도 언어적인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작곡한 노래들도 문화가 반영된 음악들이니까요. 이를 극복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예요(웃음).”

 <노담>에는 분명 보편성에 수렴된 수많은 개별성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배태된 언어적 뉘앙스,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담론, 댄서와 싱어를 엄격히 구분하는 프랑스식 뮤지컬의 독특한 양식 등. 이는 그가 명명한 ‘대중오페라’(People’s Opera)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과거에 오페라가 굉장히 고상하고 엘리트계층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대중들도 즐기게 됐어요. 오페라는 모든 극을 노래로 이끌지만 오페레타(Operetta)2)는 절반은 대사, 절반은 노래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는 좀 더 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죠. 제 음악은 팝 뮤지컬과는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진짜 오페라’를 되살리자는 음악적 시도에서 출발했으니까요. 소설의 깊이 있는 서사와 일렉트릭 기타, 전통 악기들의 연주가 결합된 음악은 오페라가 지닌 진지함과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표현하고 있죠. 이 작품에는 다양한 음악들이 등장하는데, 저는 이탈리아인으로서 라틴적인 요소들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어요.”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은 <노담>의 정체성이자 대중오페라의 지향점이다. 여기서 구심점은 그가 강조한 ‘진지함’과 ‘모더니티(modernity)’가 된다. 일반적인 쇼 비즈니스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고유한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문법으로 본질을 지킨 것이다.

 “오페라의 감성은 유지하되 오페라 가수들(벨칸토 창법)과는 다른 창법을 구사하고 있어요. 마이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팝적인 느낌이 강하죠. 마이크로 울려 퍼지는 가수들의 음성은 록 콘서트를 연상시켜요. 인물에 따라 창법도 다른데, 이를 통해 상황에 따른 인물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묘사할 수 있죠. 이렇게 오페라가 지닌 고상함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현 시대의 목소리로 전하는 것,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바로 대중오페라예요. 결국 음악은 하나의 언어이자 동작이며 인간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손길이죠.”

 <노담>은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던 수많은 이방인들, 즉 타자들의 노래이다.

  현재 이탈리아·프랑스 이중국적자인 그도 이방인의 삶을 살아왔다. 1946년 베트남 사이공(現 호치민)에서 태어난 그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전 세계를 옮겨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쩌면 시대를 앞서간 예술적 영감과 몽상가적 기질은 유년 시절의 정신적 유산일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전통 칸초네 형식에서 탈피해 팝과 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킨 음악적 여정만 보더라도 그를 둘러싼 외연은 작품 속 인물 중 그랭구아르(음유시인)를, 내연은 콰지모도(종지기)를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직접 작곡한 노래를 나만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예술가를 꿈꿨어요. 그래서 독학으로 피아노도 연주하고 작곡도 하기 시작했죠. 마음속에 숨겨진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어요. 콰지모도에게 애착이 가는 것도 그를 통해 제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보잘 것 없고 작은 존재이지만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흡인력과 폭발력은 대단하잖아요. 그랭구아르가 쇼맨십으로 무대를 장악한다면 콰지모도는 내면을 파고들죠. 추한 외모와는 상반된 그의 노래는 너무도 절절하고 아름다워요.”

 그는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 <불공평한 이 세상(Dieu Que Le Monde Est Injuste)>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는 <성당의 종들(Les cloches)>을 꼽았다.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음악과 상징적인 춤의 절묘한 합이 예술 그 자체로서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작품에 참여하기 전, 이미 메인 테마곡인 <아름답다(Belle)>3)를 써놓은 상태였어요. 작곡하는 동안 마치 열병에 걸린 듯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죠.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도 작곡은 ‘선물’이에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순간이죠. 아무리 준비하고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수도자처럼 기다려요. 그러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환호성을 지르죠(웃음).”

 국가와 인종, 음악과 언어의 탈 경계에 선 그의 음악에는 자기로부터의 해방, 자유정신이 흐르고 있다. 음악으로 사유하고 음악으로 실천해온 70년 인생의 지표가 된 단어들, 즉 ‘노트르담 드 파리’ ‘사랑’ ‘숙명’ ‘음악’은 심리적 지층에 얼마나 단단한 화석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이 작품은 인생의 전환점,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극의 핵심어인 사랑과 숙명은 저와 모든 이들에게 의미가 클 거예요. 사랑을 잃어도 또 원하고 필요로 하니까요. 불어로 숙명은 ‘Fatalité’인데 정말 어렵고도 엄숙한 말이죠. 음악도 그래요. 음악이 곧 저의 숙명인데, 타인에게 가장 편하게 말을 건네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이죠.”

 관객들이 그에게 그가 관객들에게 보여준 믿음으로 오늘도 ‘선물’을 기다린다는 오선지 위의 혁명가 리카르도 코치안테.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시가 내게로 왔다’며 시인의 숙명을 읊조렸듯, 악보 위에 내려앉은 모든 찰나들은 그만의 아포리즘이 되었다. 시간의 무게가 축적된 예술의 석탑처럼.



1)뤽 플라몽동(Luc Plamondon)과 셀린 디옹의 ‘아직 사랑은 있다(L’amour existe encore)’, <토이 스토리>의 삽입곡 ‘내겐 친구가 있잖아’ 등을 작곡함.
2)‘작은 오페라’로 직역되는 경가극(輕歌劇). 오페라보다 가벼운 분위기의 대중적인 음악극으로 파리와 빈을 중심으로 발전함. 19세기 후반 오늘날의 형태로 확립, 뮤지컬의 기원이 됨.
3)첫 발매 당시 44주간 프랑스 음반차트 1위를 기록함.



글. 사진/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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