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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5년 11월
제목  시골에서 찾은 행복의 민낯 - 가족의 힘 / 김선영, 목수, 더테이블가구 공동대표



7년 전, 봄이면 아장아장 걷게 될 아이를 위해 우리는 공원 근처 아파트로 이사했다. 19평 복도식 아파트를 우리 손으로 고치면서 처음 전동 공구를 만져보았다. 그리고 작은 거실에 식탁 겸 책상으로 사용할 테이블을 놓기로 했다. 하지만 시중에 파는 테이블은 너무 크거나, 용도에 비해 작거나, 터무니없이 비싸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 부부는 집 근처 목공방에 맞춤 제작을 의뢰하게 되었다.

눈이 오는 날, 우리는 낯선 공방으로 들어서는 계단을 걷고 있었다. 남편이 공방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공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희뿌연 먼지가 부유하는 작업대 앞, 날카로운 톱날이 솟아있는 기계, 낡은 공구들. 하나같이 거칠고 투박해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관찰하다가 작업대 위에 놓인 가공된 나무를 보았다. 손으로 만져본 질감은 의외로 부드러워 순간 딱딱한 나무토막 하나가 꽤 감성적으로 다가왔다. 나뭇결을 가만히 바라보니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공방을 나오며 남편은 말했다. “테이블 말이야,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남편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에 나는 별 뜻 없이 “우리가 할 수 있을까?”하며 웃었지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공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작은 베란다를 작업실 삼아 자르고 다듬으며 집에서 쓸 가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은 취미 정도로 여겼던 가구 만들기가 어느새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와 고단함을 즐거움으로 느끼는 우리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공은 그 매력만큼이나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작업이었다. 가구 만드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손가락이 찢어지거나 나무 가시가 깊숙이 박혀서 응급실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자잘한 상처가 생기고 아물기를 반복하는데도 우리는 더욱 고난도의 작업을 공부하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주문을 받아 가구 만들기를 실습하면서 3년 후 파주에 작은 창고를 얻어 가구 작업실을 열었다. 낡은 창고를 청소하고 중고 기계를 넣으면서도 행복했다. 우리의 노력과 동력으로만 움직인다는 기쁨에 힘든 줄을 몰랐다. 몇 년 전만 해도 집과 직장을 오가는 수동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살았는데 어느새 손으로 가구를 만들며 텃밭을 일구는 나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두 해가 지나고 여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이주했다. 흙이 좋고 땀 흘려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뒤늦게 깨달은 우리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월급을 받으며 순조롭게 살아갈 때는 마음 한편에는 부속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톱밥이 튀고 허리가 휠 정도로 고단한 일을 하면서도 궁색한 느낌이 점차 사라졌다.

시골에 내려온 첫해, 우리는 자주 다투었다. 그간 서로에 대한 허상에 얼마나 기대었는지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의 사랑은 환경에 따라 부피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었다. 아무 양념 없이 그를 그로,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은 처절한 과정이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멈춰선 이곳은 금세 지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 생활에 무능한 서로를 다시 사랑하는 건 가슴 떨리는 첫사랑과는 다르지만, 이해하고 보듬는 성숙한 사랑을 느꼈다.

귀촌 4년차, 고택 옆 작업 공간에서 남편과 함께 오늘도 가구를 만든다. 손대패로 평을 잡고 나면 나무의 속살이 드러난다. 저마다 다른 나뭇결과 질감과 향기를 지녔다는 점에서 사람과 닮았다. 대패를 마치고 욱신거리는 팔을 주물러주며 가족이 함께 저녁을 맞이한다. 해가 지고 나면 시골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이다. 우리는 마루에 앉아 코앞까지 다가올 것 같은 생생한 밤하늘 별빛을 바라본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달리거나 마을 강가를 거닐 때 기분이 좋았던 날은 강가 풍경 앞에서 “와아 예쁘다” 하며 탄성이 나오고, 힘들었던 날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마음의 기복에 따라 소중해졌다가 알량해졌다가 하면서, 나는 행복의 민낯을 바라보고 있다. 가족이 있기에, 그리고 푸르고 흔들리고 피우고 낙엽 지며 곁에 머무는 자연이 있기에 든든한 동력을 얻으며 살아간다.





           [출처] 월간에세이 (2015-11)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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