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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6년 03월
제목  눈이 거울이 되어준다 - 이 한 장의 사진 / 백성현, 사진가 · 그룹 ‘코요태’ 멤버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껏 내가 누른 셔터 수가 얼마나 될까? 그렇게 담은 내 사진의 장수는 얼마나 되며, 그중에서도 내가 찍었던 사람 수는 몇 명이나 될까?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으니 그걸 대략적으로나마 정리하는 건 생각만으로도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에는 컴퓨터에 저장된 디지털 사진 파일과 필름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찍은 사람의 숫자를 한번 세어보려는 쓸데없는 도전을 하다가 금방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등장하는 사진들을 한 폴더에 모아놓고 아무 생각 없이 오른쪽 방향 키보드를 눌러 사진을 넘기며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사진 속 인물들의 눈동자 속에 희미하게, 그리고 작게 비춰지는 내가 보였다.
사진 찍히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는 아직도 포털 사이트에 공개된 프로필 사진이 6년 전에 찍은 장발에 수염을 기른 모습일 정도로 내 사진이 없다. 그러던 내가 희미하게나마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견하니 무언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사진 속의 나를 발견하기까지 나조차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찍은 수많은 사진 속 인물들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 느끼는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나는 그때부터 인물을 촬영할 때 혼자 변태 같은 행동을 했다. 물론 남에게는 전혀 폐를 끼치지 않고서 말이다. 인물 촬영을 하면서 그들의 눈동자 속에 비춰진 나를 발견하며 사진을 찍는 일인데, ‘이것도 일종의 사인이나 문신 혹은 증거가 될 수 있겠지’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내 모습이 비춰진다는 걸 알고 나서 촬영한 인물들의 눈동자 속 나의 모습, 또 그것을 알기 전에 찍었던 사진 속 인물들의 눈동자 속 나의 모습, 그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그들의 눈빛 속에 내 모습이 모두 들어가 있다니, 나 혼자서만 신기해하고 흥미롭게 여기는 하나의 카테고리가 생긴 셈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눈은 나에게 거울이 되어주었다. 그들을 촬영하며 내가 그 속에 함께 담긴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의미를 꽤 깊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사진을 찍으며 내게 새로운 짜릿함을 주는 하나의 주제가 된다.
지금껏 내가 촬영한 수백, 수천, 수만 명…. 그 모든 사람들의 사진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니 그 얼마나 신 나고 다이내믹한 일이란 말인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촬영하다가 뒤늦게 알고 나니, 예전 사진들을 뒤져가며 그 속의 나를 찾는 재미에 푹 빠져 본의 아니게 포트폴리오 정리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는 거울이 달려 있다. 그 거울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의 안에 담긴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눈동자 거울에 비친 모습만이 아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상대가 가깝거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것 이상의 느낌과 의미로 당신에게 전달될 것이다.
나의 눈동자 속에도, 당신의 눈동자 속에도 이제 담게 될 그 많은 것들…. 우리는 그것들을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어쩌면 그 자체를 인지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이제부터는 마술처럼 원래 보이지 않았던 사진 속의 나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당신이 찍었던 사진 속에,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 속, 그 사진 속 인물의 눈동자 속에 당신이 있는지, 혹은 누군가 비춰지는지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날의 모든 기억이 증폭되기도 해서 하는 말이다. 앞으로 당신은 내 사진이 아닌 다른 사진가들의 사진을 볼 때도, 피사체의 눈동자 속을 한 번 더 확인하며 촬영한 이를 찾아보는 눈이 하나 더 생길 것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2016-03)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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