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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노트르담 드 파리>로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 윤형렬(31)에게도 뮤지컬은 인생의 메타포이자 자기증명과 확신의 장이었다. 그는 뮤지컬 배우가 되기 전, 열네 살 때부터 목표로 했던 가수로 데뷔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로 잠시 날개를 접어야 했고, 주춤해진 꿈은 허공에 흩날리는 조각들과 같았다. 그 기억의 편린들을 쫓다보면, 음악과 가수만을 위해 구성된 그의 10대와 20대의 시간들과 조우하게 된다. 이처럼 시간의 지층에 고유한 무늬로 새겨진 꿈의 방정식을 듣기 위해 정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학창시절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그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른 수식으로 자신만의 좌표를 설정해왔다. 전교 1등, 반 꼴찌에서 두 번째, 가출, 검정고시, 대학 진학(중앙대 영어학), 가수와 뮤지컬 스타가 되기까지, 그의 이야기는 한 편의 성장 드라마와 같았다.
“유명한 연예인이 아닌, ‘음악’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고1 때 방에서 몰래 기타를 치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났지만, 독학으로 기타와 피아노를 익혔어요. 철없던 그 시절, 아버지의 반대에 반항하며 6개월 간 가출도 했지만 온갖 아르바이트를 통해 현실의 벽을 체감했죠. 당시에는 이른 저녁이 통금시간일 정도로 엄격했던 아버지로부터 제 꿈을 인정받는 것이 제1의 목표였어요.”
자신과 아버지의 욕망의 줄타기에서 방황한 그는, ‘KMTV MVIO 가요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2003)에서 자작곡으로 은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1집 ‘逸(편안할:일)’이 문화관광부 선정 ‘이달의 우수 신인 음반’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로써 음악적 잠재력을 공인받은 그는 아버지와의 갈등의 거리도 조금씩 좁혀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칭찬 들은 적이 없어요(웃음). 하지만 제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을 아시기에 첫 공연 후 많이 우셨죠.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인 부모님을 생각하면 죄송스러움과 감사함이 교차해요. 때문에 ‘콰지모도’는 여러모로 저와 떼래야 뗄 수 없죠. 콰지모도처럼 소외와 괄시, 상실감과 패배감이 들었던 시절에 감정이 폭발하면서 극적으로 잘 맞는 옷을 입었으니까요.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죠.”
마치 “붕괴된 건물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듯한” 심정으로 뮤지컬 배우라는 생소하고 무거운 옷을 걸치고 또 다른 페르조나(Persona)인 콰지모도로 살게 된 그는, ‘불공평한 이 세상’과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를 누구보다 절절하고 절실하게 불렀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등굽음과 상처를 치유하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피어났다. 콰지모도로 농익어 가면서 점점 등이 굽어갈수록 그의 어깻죽지에는 활짝 비상할 수 있는 꿈이 실리게 되었다. ‘제14회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 인기스타상, ‘제2회 더 뮤지컬 어워즈’ 남우신인상 및 인기상, ‘제2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남자신인상(2008), ‘제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올해의 스타상(2009)을 수상하면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훈장이자 높은 담이었던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잔상을 지우기 위해 수없이 불러낸 콰지모도를 떠나보냈고, 이후 <아킬라><햄릿><모차르트><두 도시 이야기><광화문연가>를 통해 배우로서의 내연과 외연을 확장시켜왔다.
“3년 간 콰지모도를 하면서 허리디스크가 심해졌고, 결국 수술까지 받았어요. 수술 한 달 반 후에도 무대에 올랐는데, 허리보호대가 흉부를 압박해서 숨이 반 밖에 쉬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웠죠. 수술 직전에는 발목부터 엉덩이까지 터질 듯 저렸고, 다리도 잘 움직이지 않아 절름거리며 공연했어요. 콰지모도 그 자체가 된 거죠. 친구들은 ‘꼽추 3년 하더니 정말 꼽추 될 뻔 했다’며 놀렸지만, ‘불공평한 이 세상’이라는 노래가 제 심정 같았어요.”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무대에 올랐던 그 시간들도 공익근무요원으로 임했던 공백기에는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규칙적인 조직생활을 통해 그간 자신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었고, 이제는 20대라는 방패막이 걷히고 신인시절도 지났기에 내실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만 “하행선 에스컬레이터를 탄 듯” 정체된 시간 같았지만,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여유가 생겨 매사가 편해졌다는 그는, <두 도시 이야기>로 다시 관객들 앞에 섰고, 탁월한 캐릭터 분석과 감정표현으로 매력적인 시드니 칼튼을 연출해냈다.
“제가 성격은 털털하지만 가끔 욕심이 과부화 될 때가 있어요. 노래를 통해 좋아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더 좋아지고 더 잘하게 되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상관관계를 경험했는데, 이 작품도 그런 열정으로 임했어요. 사랑을 통해 변화하는 인물을 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는데, 제 판단과 노선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 됐을지 모르겠네요(웃음).”
작품 속에서 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그에게 사랑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방식과 상황은 다르겠지만 사랑할 때는 모든 다 해주는 편”이라고 했다. 순수한 열정과 마음만은 같다는 얘기다. 사실 사랑의 대상 때문에 삶의 빛깔이 짙어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인생의 희망이자 존재의 의미일 것이다. 그가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많은 눈물을 흘린 것도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같이 간 친구에게 창피할 정도로 감정이 복받쳐서 다섯 번 넘게 울었어요(웃음). 특히 장발장이 코제트를 무릎에 눕히고 ‘Suddenly’를 부를 때의 표정은 잊을 수 없죠. 수양딸로 인해 사랑과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 지점이 시드니 칼튼이 ‘I can't recall’을 부를 때의 감정과 비슷했어요. 휴잭맨처럼 ‘어떻게 했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는 어떤 색을 섞어도 귀착점이 되고 변함이 없는 검정색을 좋아하지만 목표만큼은 무지개색을 지향한다고 했다. ‘뮤지컬답게’ ‘대중가요답게’ 노래를 다루는 데 타고난 그는 기대치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노래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작년 6월 소집해제 이후 <모차르트><두 도시 이야기>, 일본에서 공연한 <광화문 연가> 까지 쉴 새 없이 보냈어요. 그래서 상반기에는 차분히 앨범 준비와 방송 등으로 스스로 정비하는 시간을 갖으려고 해요. 아직 미정이지만, 일본 음악시장에서 제 목소리를 찾는 마니아들의 문을 두드릴만한 활동 계획도 구상중이에요. 시대극뿐만 아니라 현대극도 많이 하고 싶고, 관객들에게 진정성으로 다가가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독특한 음색으로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채색해온, 앞으로 채색해 나갈 그의 빛깔을 명료하게 만든 성공에너지의 질료는 바로 ‘집념’과 ‘솔직함’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나는 여행>을 감명 깊게 읽었다며 권했다. “행복의 양과 불행의 양은 같은 겁니다”라고 했던 시인의 말처럼, 그 역시 욕심을 버리고 비우는 삶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let it be’가 자신의 모토라며 밝은 미소를 보인 그는, 자아를 찾기 위한 긴 여행길에 올랐다.